선생님은 왜 끝내 말하지 못했는가 – 나쓰메 소세키 『마음』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夏目漱石 | 1867~1916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근대적 자아의 고독과 인간 내면의 에고이즘을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마음』을 남겼다.

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Ver.5

출처: 월간 리크루트

본 칼럼은 한국경제 월간 리쿠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마음』 줄거리 요약

 

대학생 ‘나’는 가마쿠라에서 우연히 한 중년 남자를 만났다. ‘나’는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지만, 선생님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지식인이었지만 일도 하지 않았고, 사람을 멀리했으며, 세상과 단절된 채 아내와 조용히 살았다. ‘나’는 그에게 끌렸다. 선생님이 어느 날 말했다. “나는 나 자신조차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겁니다.”

‘나’의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 곁을 지켰지만, 선생님의 편지가 도착하던 날, 아버지를 뒤로하고 도쿄행 기차에 올랐다. 편지는 유서였다. 유서에는 젊은 시절 친구 K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K와는 도덕과 정신적 수양을 이야기하던 벗이었다. 둘은 하숙집 아가씨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다. K가 먼저 사랑을 고백했을 때 선생님은 아주머니를 찾아가 혼인 약속을 먼저 받아냈다. 며칠 후 K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지문에 번진 선혈과 짧은 메모에는 ‘의지가 박약해 앞날에 전망이 없으니 자살한다’고 적혀 있었다.

얼마 후 선생님은 아가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를 볼 때마다 K의 유령이 떠올라 사랑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 아내는 남편이 달라졌다고 느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30년이 흐르고, 메이지 천황이 죽었으며 노기 장군이 순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선생님은 마침내 ‘나’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마지막 단어는 ‘아내’였다. 그러나 아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음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이 산다

선생님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은 죄악입니다…. 그리고 신성한 것입니다.” ‘나’는 선생님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나’는 선생님과 대화를 할 때면 늘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습니다… 내 과거를 들춰내서라도 말입니까?”

선생님에게 과거란, 어린 시절 삼촌에게 전 재산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나약함이다. 그래서 그는 평소 도덕적이지 않은 인간을 경멸해 왔다. 누구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때 우정을 나누었던 K에게 비겁하고 수치스러운 자신이었다.

“평소에는 모두 좋은 사람이지요. 그러다가 여차하면 갑자기 악인으로 바뀌니 무서운 일이지요.” 타인에게 경고하는 말이지만, 실은 자신에게 건넨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아내에게도 세상에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 때문에 아내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청년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나약함 또는 회피로만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은 결국 누구에게도 완전히 보여줄 수 없는 심연이기 때문이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도 도리안은 자신의 추악한 영혼을 비추는 초상화를 죽기 전에서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기심이라 부르겠지만, 어떤 침묵은 관계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아내의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끝내 말하지 않았다.

 

인간은 왜 스스로를 심판하는가

소설에는 여러 죽음이 등장한다. ‘나’의 아버지가 병상에서 신문을 펼쳐 메이지 천황이 위독하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아 천자님도 드디어 가셨구나 나도…” 천황이 죽자, 노기 마레스케 장군도 천황을 따라 자결했다. 일본 전체가 흔들렸다. 어떤 사람들은 메이지 정신의 마지막이라고 감동했고, 어떤 사람들은 시대착오라고 말했다.

노기 장군의 죽음은 선생님에게 영향을 미쳤다. 노기 장군은 러일전쟁에서 수만 명의 부하를 잃은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죽음을 통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 시대가 저물고, 그 시대를 마무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스스로를 심판하는 것은 더 강력한 기준이 자기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죄를 규정하지만, 죄책감은 개인이 구성한다. 같은 행위를 두고도 어떤 사람은 문제를 느끼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을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른 후, 법의 추적보다 자신의 내면에 의해 더 강하게 고통받는다. 《주홍글씨》의 딤스데일은 외부적으로는 존경받는 성직자였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고문하는 삶을 살았다.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지만, 자신의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 소세키 연구의 권위자인 에토 준은 선생님의 죽음을 폐쇄된 자아의 파멸로 해석한다. 근대적 개인주의가 타인과의 소통 불가능성이라는 벽에 부딪혔을 때 지식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왜 인간은 끝내 말하려 하는가

선생님은 학생이 찾아오는 것을 반겼다.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학생이 와 주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화는 점점 깊어져, 작은 일상에서부터 아버지의 병환까지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어떤 질문은 침묵으로 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뜻밖에 편지를 보냈다. “지금 당신 앞에 그것을 명백하게 말할 자유를 얻었다고 믿습니다.”

얼마 후 선생님은 마지막 유서를 아내가 아닌 ‘나’에게 보내왔다. “기억해 주십시오…. 나는 아내에게는 아무것도 알리고 싶지 않소. 아내가 내 과거에 대해 가진 기억을 되도록 순백의 상태로 있게 해 주고 싶은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니까…. 고백된 나의 비밀로서 모든 것을 가슴속에 담아 놓아 주십시오.”

왜 이들은 끝내 고백하고 마는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톨스토이의 《고백록》은 더 이상 고백하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고백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의미를 구성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신곡》에서 지옥의 망령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그들은 이미 죽었지만, 말하지 못한 이야기 속에 여전히 붙잡혀 있다. 말하는 행위는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존재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당신도 고백하지 못하는 말이 있는가. 그로 인해 누가 고통을 받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볼 질문

1. 당신에게도 끝내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가?

2. 어떤 침묵은 관계를 지키고, 어떤 침묵은 관계를 무너뜨린다. 당신의 침묵은 어느 쪽인가?

3. 사회가 묻지 않아도 스스로를 심판하게 만드는 당신의 기준은 무엇인가?

노진화 박사 — 인문학 강연자 | 리더의 인문학 시리즈 저자

이 칼럼의 주제는 기업 인문학 강의 — 리더십, 조직문화, 변화관리 프로그램으로 확장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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