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된 괴물에 맞설 용기 – 외젠 이오네스코 『코뿔소』

외젠 이오네스코

외젠 이오네스코

Eugène Ionesco | 1909~1994

루마니아 태생의 프랑스 극작가.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작가로, 언어의 붕괴와 전체주의의 광기를 우화로 그려냈다. 『대머리 여가수』, 『수업』, 『코뿔소』를 남겼고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Ver.4

출처: 월간 리크루트

본 칼럼은 한국경제 월간 리쿠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코뿔소』 줄거리 요약

 

사람들은 왜 괴물이 나타나도 도망가지 않았을까. 외젠 이오네스코의 『코뿔소』(1959)는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코뿔소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부조리극이자, 전체주의의 침투를 동물 우화로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베랑제와 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베랑제는 삶에 의욕이 없는 인물이지만, 친구 장은 그를 꾸짖으며 “의지를 가져라”, “자기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라고 훈계하는 전형적인 지식인이다.

그 순간, 코뿔소 한 마리가 거리를 가로지른다. 사람들은 놀라지만 정작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논리학자는 삼단논법을 읊조리고, 코뿔소의 뿔이 하나인지 둘인지, 아시아산인지 아프리카산인지 같은 사소한 분류학적 논쟁에 매달린다. 실존적 위협 앞에서 형식에 집착하는 인간의 나약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코뿔소로 변하기 시작하고, 베랑제를 꾸짖던 장마저 코뿔소가 된다. 코뿔소가 늘어날수록 부정은 동조로, 동조는 찬양으로 변한다. 베랑제의 연인 데이지조차 코뿔소를 ‘신’이라 부르며 인간의 세계를 떠난다. 모두가 가죽이 두꺼운 괴물이 되어버린 광장에서 베랑제 홀로 남아 외친다. “항복하지 않겠어!”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겠다고 홀로 선언한다.

 

왜 사람들은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았는가

마을에 처음 코뿔소가 나타났을 때 모두 의아해했다. 그러나 “앗, 코뿔소다!”라는 외침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그 소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반복은 감각을 마비시킨다. 경고는 울리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충격이 일상이 되면 질문이 사라진다.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은 고립이 두려워 입을 다문다. 침묵이 늘어날수록 다수의 목소리는 더 커 보인다.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만장일치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변신을 합리화한다. “그 친구는 맑은 공기와 들판을 원했던 거야.” 한 사람이 변명하면 다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를 끄덕이면 또 다른 사람이 따라 끄덕인다. 나중에는 코뿔소를 아름답다고까지 한다. 창밖의 코뿔소 떼가 점점 늘어나자, 데이지의 눈빛이 달라졌다. 두려움이 동경으로 변했다. “저것 봐요, 저들은 춤추고 있어요.”

르네 지라르는 말했다. “우리는 사물 자체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코뿔소가 되는 이유는 뿔이 좋아서가 아니라, 뿔을 가진 다수가 부러워서다.

광기는 폭력으로만 전염되지 않는다. 보에프 씨가 코뿔소가 되었을 때, 그의 아내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녀는 코뿔소 등에 올라탔다.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변신에 동참한 것이다. 가장 위험한 전염은 혐오가 아니라 애정의 언어로 온다. ‘저 사람이 선택한 것이니 나도 따르겠다’는 순간, 광기는 헌신의 얼굴을 한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에서 인간에게는 타인의 접촉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근원적인 공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중 속에 섞이는 순간, 그 공포는 사라지고 강렬한 해방감을 맛본다. 두려움이 해방감으로 둔갑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묻지 않는다.

 

말이 사라질 때 인간도 사라지는가

이오네스코는 1930년대 언어가 죽어가는 과정을 목격했다. 『코뿔소』에서 언어는 네 단계로 붕괴한다. 처음엔 코뿔소를 설명하려 한다. 뿔이 하나냐 둘이냐, 아시아산이냐 아프리카산이냐. 분류의 언어다. 그 다음엔 합리화하는 언어가 등장한다. “그 친구는 자유를 원했던 거야.” 그 다음엔 찬양의 언어가 된다. “저들은 춤추고 있어요.” 마지막엔 포효만 남는다. 몸이 변하기 전에 말이 먼저 코뿔소가 된 것이다.

이오네스코의 친구 중에 지식인들이 가장 먼저 파시스트가 되어갔다. ‘모든 고양이는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고양이다.’ 형식은 완벽했지만 전제가 틀렸다. 지식인은 사실을 인정하기가 고통스러울 때 ‘정상성’의 기준을 바꾸는 논리를 만든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집단에서 혼자 정상이고 나머지가 비정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지식인들은 과거를 진부한 것으로, 변화를 진보로 둔갑시킨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먼저 변한 것은 언어였다. ‘민족’, ‘순수’, ‘강함’이라는 단어들이 새로운 의미를 입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언어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다른 존재가 되어갔다. 개념이 갑작스럽게 변한다면 그 말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못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잃는 것이다.

코뿔소가 된다는 것은 몸의 변신이 아니라 말의 죽음이다. 데이지가 말했다. “혹시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비정상일지도 모르잖아요.” 데이지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당신은 사람으로 남아있을 자신이 있는가

베랑제는 왜 코뿔소가 되지 않았을까. 그가 흔들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코뿔소를 흉내 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거울 앞에서 인간의 얼굴이 코뿔소보다 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 지위도, 논리적 우위도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야망을 꿈꿀 때, 그는 코뿔소의 강함과 자신의 영혼을 맞바꾸지 않았다. 야망 자체는 독이 아니다. 그 야망이 나를 코뿔소로 만드는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카뮈의 『페스트』 속 의사 리외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에서 거창한 이념도, 역사적 사명감도 없이 그저 매일 환자 곁에 있었다. 도망칠 수 있었지만 남았고, 지쳤지만 멈추지 않았다. 유혹에 맞서는 가장 단단한 방어는 자신의 일상을 지키는 것이다.

코뿔소가 다수가 되면 사회의 언어가 바뀐다. 코뿔소가 된 사람들은 남은 사람을 설득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건네는 “너만 이상한 거야”라는 말이 가장 강력한 전염의 통로다. 관계가 깊을수록 그 말은 더 깊이 파고든다. 모두가 코뿔소가 된 세상에서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고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압력 앞에서도 자신의 언어를 지키는 것이다. 다시 코뿔소가 나타날 때, 광기는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되어 일상을 잠식할 것이다. 군중 속에서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배제를 각오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고독한 목소리가 이어질 때 광기는 멈춘다. 당신은 지금, 사람으로 남아있을 자신이 있는가.

생각해 볼 질문

1. ‘다들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간 일이 최근 있었는가?

2.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묻지 않게 된 말이나 관행은 무엇인가?

3. 가장 가까운 사람이 “너만 이상한 거야”라고 말할 때, 당신은 무엇을 지킬 것인가?

노진화 박사 — 인문학 강연자 | 리더의 인문학 시리즈 저자

이 칼럼의 주제는 기업 인문학 강의 — 리더십, 조직문화, 변화관리 프로그램으로 확장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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