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뒤마
Alexandre Dumas | 1802~1870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역사적 배경 위에 스릴 넘치는 모험을 펼쳐낸 대중 소설의 거장이다.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17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 불멸의 모험소설이다.
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Ver.4
출처: 월간 리크루트
본 칼럼은 한국경제 월간 리쿠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삼총사』 줄거리 요약
우정과 명예를 건 모험.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1844)는 17세기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추기경이 권력을 다투던 혼란스러운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가스코뉴 출신 청년 다르타냥은 가문의 명예와 총사를 꿈꾸며 파리로 향하지만 가는 길에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편지를 잃어버리고 만다. 홀로 가스코뉴 출신의 트레빌을 만나러 가는 길, 운명처럼 세 총사를 만나 우정을 나누게 된다.
한편, 루이 13세의 왕비는 영국 공작 버킹엄을 사랑하고 있었다. 왕비는 국왕이 선물한 다이아몬드를 버킹엄에게 건넸고, 이를 눈치챈 리슐리외 추기경은 왕비를 몰락시키려는 정치적 무기로 이용하려 했다. 다르타냥은 여관 안주인 콘스탕스 부인을 통해 이 음모를 알게 되고, 네 총사는 왕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영국으로 떠난다. 리슐리외의 음모와 추적 속에서도 다르타냥은 다이아몬드를 무사히 파리로 가져와 왕비를 구해낸다. 하지만 이로 인해 추기경과 그의 첩자 밀라디는 다르타냥을 증오하게 된다.
루이 13세가 영국과 전쟁을 벌이자, 총사들과 다르타냥은 전선에 투입된다. 밀라디는 다르타냥을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버킹엄 암살을 사주하며, 급기야 다르타냥의 연인 콘스탕스 부인을 독살하는 등 끝없는 악행을 저지른다. 분노한 다르타냥과 삼총사는 한때 사랑했던 밀라디를 처형하며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 결국 그는 용기와 충성을 인정받아 시골 청년에서 근위대원으로, 그리고 마침내 꿈꾸던 총사가 된다.
작품 해석
돈키호테를 닮은 다르타냥
다르타냥의 아버지는 길 떠나는 아들에게 당부했다. “국왕과 추기경을 빼고는 누구의 모욕도 참지 마라. 귀족의 출세에는 오직 용기뿐이다…. 모험을 추구하고, 싸우려면 더더욱 싸워라.”그리고 은화 15에퀴와 편지, 노란 말을 건넸다. 총사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총사는 신분 상승의 상징이자 명예로운 삶의 증표였기 때문이다.
다르타냥은 돈키호테와 많이 닮아 있었다. 돈키호테의 로시난테처럼 초라한 노란 말을 타고 파리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모욕을 참지 않았다. 돈키호테처럼 칼을 들고 결투를 신청했고, 불의한 일에는 적극 나섰다. 콘스탕스 부인이 왕비의 다이아몬드 위기를 털어놓았을 때도 주저 없이 도움을 약속했다. 동료들이 쓰러져 혼자 남았어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해냈다.
그러나 다르타냥은 돈키호테와 달랐다. 돈키호테가 환상 속 거인과 맞섰다면, 다르타냥은 리슐리외 추기경의 음모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진짜 적과 싸웠다. 그의 결투는 이상을 향한 맹목적 싸움이 아니라, 정의와 명예라는 현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돈키호테가 꿈꾸던 기사의 이상은, 다르타냥의 손에서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루이 13세의 왕비 안은 영국의 버킹엄 공작과 은밀한 연정을 나누었고, 국왕이 하사한 다이아몬드를 그에게 선물했다. 이를 알게 된 리슐리외 추기경은 이를 빌미로 왕비를 몰락시키고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려 했다. 반면 총사대장 트레빌은 왕권의 상징인 총사를 통해 추기경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했다.
영국 원정을 앞두고, 다르타냥이 트레빌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트레빌이 말했다. “네 명이 출발해 한 사람만 도착해도 성공이다.” 그러나 다르타냥은 “혼자라도 가겠다.”고 말한다. 결국 삼총사도 함께 영국으로 향한다. 추기경은 끝까지 추적했다. 칼과 총알이 난무한 여정에서 동료들이 하나씩 쓰러졌지만, 다르타냥은 다이아몬드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데 이들은 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싸우는 걸까? 추기경은 권력을 위해, 왕은 체면을 위해, 왕비는 사랑을 위해 싸웠다. 트레빌은 자신이 일궈낸 총사 공동체를 위해, 다르타냥은 가스코뉴 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아토스는 과거의 상처를, 포르토스는 허영심을, 아라미스는 세속과 성직 사이의 갈등을 잊기 위해 싸웠다.
당시 귀족에게 결투는 곧 생존이었고, 명예는 목숨보다 무거운 가치였다. 마치 『삼국지』의 관우가 의리와 신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듯이, 명예란 겉보기에 무모해 보여도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이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위해 인생을 담보로 걸고 있다. 지금 나의 다이아몬드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
다르타냥과 세 총사의 첫 만남은 결투로 시작되었다. 시골 출신 청년의 거친 태도는 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아토스는 어깨 상처를 숨기려는 자존심이, 포르토스는 허영심이, 아라미스는 성직과 연애 사이의 비밀이 드러난 듯한 자존심이 상처받았다. 그러나 결투 직전, 추기경의 근위대가 나타나자 넷은 곧바로 한 편이 되어 싸웠다. 이 순간이 그들의 맹세를 낳았다.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
그렇다면 모두는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공통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기경의 근위대라는 위협 앞에서 개인적 갈등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오래 갈 수 없다. 네 사람은 함께 싸우는 과정에서 서로의 약점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배척하지 않고 감싸 안았다. 허영과 상처, 비밀과 혈기가 드러났지만, 서로의 결핍은 오히려 결속을 단단하게 했다. 서로의 계급과 이해관계는 달랐지만, 더 큰 대의 앞에서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들의 우정에도 끝은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다르타냥과 삼총사는 각자의 길을 간다. 아토스는 고향 영지로 돌아가 영주가 되고, 포르토스는 부유한 과부와 결혼해 남작이 되며, 아라미스는 성직의 길을 택한다. 다르타냥만이 파리에 남아 총사가 된다.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모두’ 함께한 순간이 있다면, 언젠가 나 ‘ 하나’의 길을 홀로 가야 하는 것도 있다. 혼자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가 있고 만들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생각해 볼 질문
1.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는 현대 조직에서도 실현 가능한가?
2. 충성과 우정은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그 한계는 있는가?
3. 당신에게 목숨을 걸 수 있는 ‘대의’는 무엇인가?
노진화 박사 — 인문학 강연자 | 리더의 인문학 시리즈 저자
이 칼럼의 주제는 기업 인문학 강의 — 리더십, 조직문화, 변화관리 프로그램으로 확장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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