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 1749~1832
독일의 대문호이자 시인, 극작가, 정치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대표하며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을 역임했다. 60년에 걸쳐 완성한 『파우스트』는 세계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Ver.4
출처: 월간 리크루트
본 칼럼은 한국경제 월간 리쿠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파우스트』 줄거리 요약
영혼에도 가격표가 붙을 수 있을까. 괴테의 『파우스트』는 한 인간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욕망을 추구하는 이야기다. 이 시극은 제1부와 제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괴테는 20대 초반에 집필을 시작해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약 60년에 걸쳐 완성했다.
천상에서 주님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을 실험하기로 한다. “자네 파우스트라는 자를 아는가? 나의 종이니라…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한편 노학자 파우스트는 철학, 법학, 의학, 신학, 마법까지 섭렵했지만 지식에 회의를 느낀다. “새로운 감정을 맛보기 위해… 내 목숨을 바쳐도 좋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제안한다. “네가 ‘이 순간이여, 머물러라, 너는 아름답구나’라고 말하는 순간, 네 영혼은 내 것이다.”
그는 청춘을 되찾고 순수한 소녀 그레첸과 사랑에 빠지지만 파멸로 이어진다. 황제의 궁정에서 권력을, 헬레네에게서 절대미를, 간척 사업에서 미래를 추구한다. 눈먼 그는 마지막 순간 “자유로운 땅 위의 자유로운 인민”을 꿈꾸며 외친다. “이 순간이여, 머물러라! 너는 아름답구나!” 그러나 천사들은 선언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 파우스트의 영혼은 그레첸의 손에 이끌려 천국으로 들어간다.
파우스트는 왜 영혼을 팔았는가
『비극 1』 서두의 천상의 서곡에서 메피스토는 신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비웃는다. “인간이란 다리 긴 메뚜기 같아서 뛰다가는 풀숲에 처박히는 족속이지요.” 신은 대답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파우스트는 세상의 것들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 여전히 공허하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희망을 향해 도약하는 인간이었다. 죽은 지식에서 살아 있는 진리로 건너가려는 절박함이 있었다.
“내 가슴속에는 두개의 영혼이 깃들여서 하나가 다른 하나와 떨어지려고 하네. 하나는 음탕한 애욕에 빠져 현세에 메달려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고 다른 하나는 과감히 세속의 티끌을 떠나 숭고한 선인들의 영역에 오르려고 하네.”
마법의 외투라도 얻을 수 있어서 미지의 나라로 날아갈 수 있다면. 그는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겪고자 한다. 자신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 삶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무모하고도 희망적인 선택이었다.
반면, 파우스트의 조수인 바그너는 서재와 연구실 안에서 만족한다. 그는 책 속의 지식을 축적하며, 결국 유리병 속에서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를 창조한다. “위대한 정신들이 전해준 것을 우리가 계승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바그너에게 진리는 이미 과거의 책 속에 완성되어 있다.
바그너는 결국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를 창조한다. 그는 생명을 체험하는 대신, 실험과 지식의 도구로 생명을 흉내 내려 한다. 그러나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는 자연으로 돌아가며, 생을 마감한다. 안전한 실험실에서는 진정한 삶이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그너에게 인간은 모방 가능한 대상이지만, 파우스트에게 인간은 끝없이 추구해야 할 미완의 존재다.
악마의 다섯 가지 유혹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다섯 가지 유혹으로 시험한다.
첫째, 젊음이다. 마녀의 부엌에서 청춘을 되찾는다. 늙음은 시간의 폭력이다. 청춘은 그 폭력에 대한 반란이다.
둘째, 사랑이다. 그는 아름다운 그레첸을 우연히 만난다. 순수한 인간적 사랑, 구체적 타자와의 만남이다.
셋째, 아름다움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시대로 돌아가 아름다운 헬레네를 얻는다. 그레첸이 현실의 사랑이라면, 헬레네는 형이상학적 욕망, 절대미에 대한 갈망이다.
넷째, 권력이다. 그는 마법의 힘으로 황제의 전쟁의 전쟁을 돕고 영토를 선물로받는다. 역사를 조작하고 세계를 재편하는 정치적 힘이다. 다섯째, 시간이다. 간척 사업을 통해 “자유로운 땅 위의 자유로운 인민”을 꿈꾼다. 영원한 순간을 사로잡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시험은 악마의 실패로 돌아간다. 자본주의는 소유를 외치지만 파우스트는 체험을 원했다. “나는 인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내 안에서 느끼고 싶다.”
주님이 메피스토펠레스와 내기를 한 이유는 인간이 무조건 쉬기를 좋아하니 적당한 친구를 붙여주고자 함이었다. “그를 자극하고 일깨우도록 악마의 역할을 다하거라. 생생하고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향유하도록 하라.”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했다.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더군요.” 그래서 메피스토는 실패한다. 영혼은 상품이 아니며, 순간은 거래될 수 없다.
파우스트는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동행하는 동안 수많은 죄를 짓는다. 순수한 그레첸을 유혹해 사생아를 낳게 하고, 그녀의 어머니를 수면제로 죽게 했으며, 오빠 발렌틴을 살해한다. 또한 스스로 자살을 기도했고,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구절을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로 바꿔 신성을 모독했다.
마법으로 전쟁 결과를 조작했고, 간척 사업이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과정에서 노부부를 죽이기도 했다. 이것이 무대의 서언에서 시인이 말한 “행복해지는가 싶더니 싸움질, 깨가 쏟아지는가 싶더니 고통의 연속”이라는 파우스트의 핵심 주제다.
그런데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수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그레첸의 인도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며 천국으로 인도된다는 것이다.
괴테가 말하는 구원은 기독교의 심판과 다르다. 기독교는 믿음을 요구하지만, 괴테는 행동을 요구한다. 그에게 구원은 완벽함이 아니라 끊임없는 추구와 공동체에 있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욕망을 넘어 공동체의 자유로운 인민을 꿈꾼다. 그가 순간에 머물고 싶었던 것은 자기 만족이 아니라 미래의 공동체를 상상하는 순간이었다. 개인에서 타자로, 타자에서 공동체로 확장되는 그 방향성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 그래서 그레첸이 파우스트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수많은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구노, 베르리오즈, 리스트, 슈만—이들이 파우스트를 오페라와 교향곡으로 만든 이유는 그의 삶과 방황에 공감했고, 구원에 대한 열린 해석을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왜 파우스트의 이야기에 끌리는가? 완벽하지 않지만,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볼 질문
1. 당신의 ‘영혼의 가격’은 무엇으로 매길 수 있는가?
2. 현대 사회에서 ‘악마의 유혹’은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가?
3. 끊임없이 추구하는 삶은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가?
노진화 박사 — 인문학 강연자 | 리더의 인문학 시리즈 저자
이 칼럼의 주제는 기업 인문학 강의 — 리더십, 조직문화, 변화관리 프로그램으로 확장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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