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의 비극적 깨달음 –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레프 톨스토이

Leo Tolstoy | 1828~1910

러시아의 대문호.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실주의적 묘사로 세계 문학사에 불멸의 족적을 남겼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는 소설 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Ver.3 | 문화기호읽기 4

출처: 월간 리크루트

본 칼럼은 한국경제 월간 리쿠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줄거리 요약

 

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주인 공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반은 평범한 법조인 으로 사교계에서 아내를 만났다. 멋진 집을 사고, 집에 상류층 인사를 초대하 고, 파티도 열었다. 아내와 갈등은 있었지만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발을 헛디뎌 옆구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처음에는 가벼운 찰 과상인 줄 알았지만 점점 아프고, 몸이 변해갔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 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될지를 고민했다. “자리가 하나 비게 되었 으니 누가 그 자리에 승진하게 될까?” 아내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 사람은 제 말을 도대체 듣질 않아요.”

오직 하인 게라심만이 그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이반은 생각했다. ‘그래. 자연스러운 치유의 힘에 맡겨 보는 거야. 난 죽고 싶지 않아.’

희망과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감이 번갈아 나타났다. “저항은 불가능해.” 이반은 사흘 동안 비명을 질렀다. 극심한 공포 속에서 죽음의 충동을 느꼈 다. 가족들이 안쓰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 구나. 내가 죽고나면 괜찮아 질거야.”

이반은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누군가 그를 내 려다보며 말했다. “다 끝났습니다.”

이반은 중얼거렸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작품 해석

죽음에 대한 공포

소설은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죽음은 우리 모두 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일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순간은 오직 나 혼자만이 맞이하는 고독한 사건이다.

스위스 정신과 의사 큐블러 로스는 죽음을 5단계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부정이다. 소설에서 이반은 처음에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의사 의 진단을 믿지 않고, 다른 병원을 찾아다니며 현실을 부정한다. 두 번째는 분노다. 병이 점점 악화되자, 이반은 의사와 가족, 심지어 신에게까지 분노를 표출한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원망과 함께 주변인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다. 세 번째는 타협이다. 이반은 신에게 기도하며, 살려만 준다면 착한 일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 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는다. 네 번째는 우울 이다.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깨달은 이반은 깊 은 절망감에 빠진다.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했 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다섯 번째는 수용이 다. 마지막 순간, 이반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온을 되찾는다. 그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모든 사람에게 이론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끝까 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죽음이 왜 터부인가?

죽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화두 중 하나이다. 하지만 시 대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고대 사회에서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여겨졌다. 이집 트인들은 사후 세계를 준비했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인 하데스가 등장한다.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들은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며, 선행을 한 사 람들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지옥 에서 고통받게 된다. 불교에서는 죽음 이후에 자신의 업에 따라 다음 생으로 태어난다. 궁극적인 목표는 해탈에 이르러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대부분 종교에서는 현세에서의 선 행과 도덕적 삶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는 죽음이 삶의 종착점 이 아니라,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점차 터부시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죽음은 삶과 철저히 분리된다. 죽음은 병원이 나 장례식장 같은 특정 공간에서만 다뤄지고 죽음에 대해 진지 하게 논의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죽음관을 공부하거나, 자서전을 쓰고 사망기 를 작성한다. 이는 단순히 호스피스 케어와 같은 물리적 환경의 문제만은 아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기고,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며,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자세일 것이다.

 

이반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

이반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아내 프라스코비야는 남편의 출세에 만 관심이 있었다. 그는 가장이라는 역할 속에서 늘 강한 모습 만을 보여야 했고, 자신의 연약함과 슬픔은 혼자 삭이고 견뎌 내야 했다. 내가 믿었던 모든 것들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되 물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내는 이반이 죽고 난 후에도 연금과 유산 문제로 바 빴다.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만난 지인에게 연금을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기까지 했다. 아이들도 제 삶이 더 바빠보 였다. 소설 속에서 이반의 가족들은 그의 부재를 각자의 방식 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단면이 다. 사랑하는 가족의 부재는 남은 사람들의 삶 전체를 뒤흔들 어 놓는다. 이별 이후의 삶은 또 다른 의미에서 남은 자들이 짊 어져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다. 함께 식사하던 식탁, 나란히 걷 던 길, 대화를 나누던 시간들.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 오히려 상실의 깊이를 더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이반의 죽음은 삶의 유한함을 깨닫게 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 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 께하는 시간, 듣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말들을 서로에게 진 심으로 전하고, 함께 성장하고 늙어가는 것 등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며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 자. 우리의 삶이 더욱 의미가 있어질 것이다.


생각해 볼 질문

1. 만약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당신의 지금까지의 삶은 ‘제대로 된 삶’이었는가?

2.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왜 이야기하지 않으려 하는가?

3. 이반 일리치의 후회를 읽고, 당신이 지금 바꾸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노진화 박사 — 인문학 강연자 | 리더의 인문학 시리즈 저자

이 칼럼의 주제는 기업 인문학 강의 — 리더십, 조직문화, 변화관리 프로그램으로 확장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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