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세상에서 진짜로 살기 – 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J.D. 샐린저

J.D. Salinger | 1919~2010

미국의 소설가. 은둔 생활로 유명하며, 소수의 작품만으로 거대한 문학적 영향을 남겼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발표 이후 전 세계 젊은 독자들의 바이블이 되었다.

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Ver.4

출처: 월간 리크루트

본 칼럼은 한국경제 월간 리쿠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줄거리 요약

 

『호밀밭의 파수꾼』은 방황하는 청소년의 성장통 이야기이다. 열여섯 살 홀든 콜필드는 네 번째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학교는 아이들을 줄 세웠고, 어른들은 공부만 강요했다. 한 학생은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아무도 아이들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그는 집에 가지 않고 뉴욕을 떠돈다. 짝사랑하던 제인에게 전화를 건다, 샐리에게, 옛 친구에게,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전화를 건다. 호텔에서 창녀를 부르고, 술을 마시고, 옛 여자친구를 만난다. 그러나 모든 만남은 실패한다.

존경했던 앤톨리니 선생을 찾아간다. 그날 밤, 어둠 속에서 선생이 자신의 이마를 쓰다듬는 것을 느낀다. 홀든은 공포에 질려 도망친다. 선의였는지, 다른 의도였는지 확인할 수 없다. 앤톨리니가 중얼거렸다. “정말 이상한 아이야.” 

홀든은 춥고 배고팠다. 돈도 다 떨어졌다. 먼 거리를 걸어 몰래 집으로 갔다. 여동생 피비는 홀든에게 자꾸만 질문을 던졌다. “뭐가 되고 싶어? 한 가지도 없는 거지? 말좀 곱게 하라니까.” 홀든이 답했다. “그렇지 않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니까.”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서부로, 숲속 오두막으로, 벙어리 행세를 하며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여동생 피비에게 떠남을 예고하던 날, 홀든은 회전목마 앞에서 피비를 보며 처음으로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야기했던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홀든의 목소리로 소설은 끝난다. 

 

작품 해석

어른들을 믿을 수 있는가

홀든에게 세상은 ‘phony’, 가식덩어리였다. 학교에서는 “1888년 이래로 훌륭한 청소년을 길러내고 있습니다.”라고 자랑했다. 홀든은 비웃는다. 훌륭한 청소년은 본 적이 없다. 교장은 부자 부모에게 두 손으로 악수하고, 가난한 부모에게 고개만 끄덕였다. 역사 선생 스펜서는 시험 답안을 소리 내어 읽으며 망신을 주었다. 왜 노력하지 않느냐고 추궁했다. 왜 노력할 수 없는지는 묻지 않았다. 홀든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집안은 넉넉했다. 그러나 대화는 없었다.

앤톨리니 선생은 달랐다. 한 학생이 창문에서 뛰어내렸을 때, 다른 교사들은 멀리 섰다. 앤톨리니만 달려가 자기 재킷으로 시신을 덮었다. 갈 곳 없는 밤, 홀든은 그를 찾아갔다. 선생이 말했다. “미성숙한 사람은 대의를 위해 고귀하게 죽으려 하고, 성숙한 사람은 대의를 위해 겸손하게 살아가려 한다.” 좋은 말이었다. 그러나 선생님도 좋은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마땅한 대화상대를 찾지 못했다. 택시 아저씨에게도 말을 건다. “센트럴파크 호수의 오리들 있잖아요. 겨울에 호수가 얼면 그 오리들은 어디로 가요?” 택시 아저씨는 화를 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젠장.” 홀든은 두 번이나 다른 택시기사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그처럼 화를 잘 내는 어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오리의 겨울이 궁금했다. 세상이 얼어붙으면 오리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불완전한 어른들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몇 명의 어른을 믿는가. 

 

홀든은 왜 파수꾼이 되고 싶었는가

여동생 피비가 물었다. “오빠는 왜 그렇게 된 거야?” 홀든이 대답했다. “제발 그런 건 묻지 마, 정말 모두들 나만 보면 그것부터 물어보니 말이야. 이유는 많지…내가 그 놈의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다면 말이야. 나는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난 아득한 절벽 옆에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잡아주는 거야.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그에게 파수꾼은 이미 더럽혀진 세상에서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것들을 지키는 사람이다. 

피비가 지적했다. “오빠, 가사가 틀렸어. 로버트 번스의 원시는 ‘잡는다’가 아니라 ‘만난다’야.” 그러나 홀든에게 ‘잡는다’는 틀린 게 아니었다. 그에게는 동생 앨리가 있었다. 앨리는 열한 살에 백혈병으로 죽었다. 그날 밤 홀든은 차고의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부쉈다. 홀든이 아이들을 절벽에서 잡아 주겠다는 꿈, 호밀밭의 파수꾼은 앨리를 위한 속죄이자, 앨리가 될 수 없는 자신을 위한 기도였다. 그러나 정작 구원받아야 할 사람은 홀든 자신이다. 

그러나 그가 호밀밭에서 수천 명의 아이들을 지킨다는 것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지 않게 막는다는 뜻이다. 절벽 너머가 어른의 세계라면, 홀든은 아이들을 영원히 아이로 가두게 된다. 

피비의 학교 벽에서, 박물관 계단에서, 어디에서나 'Fuck you.'라는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칼로 새겨져 있어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홀든은 지워지지 않을 줄 알면서도 문질러 지우려 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지워지지 않을 낙서를 문지르고 있다.

 

진짜와 가짜 사이

홀든은 평소에 거짓말쟁이에 허풍이 심했다. 있지도 않은 총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며, 배를 움켜잡았다. 어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속였고, 창녀 앞에서 나이를 속였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phony’, 가식이라고 불렀다. 위선을 혐오하면서 위선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쟁이다.”고 말한다. 

크레타의 역설은 거짓말쟁이가 자신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묻는다. 그러나 샐린저는 진실과 거짓이 아니라 방황하는 존재의 이름을 묻는다. 홀든은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빨간 사냥 모자는 그에게 투명망토처럼 자신을 감추는 무기였다. 그래서였을까. 소설은 첫 장에서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카퍼필드』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데이비드는 계부에게 학대받으며 집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살았다. 그러나 유모 페고티가 그를 끝까지 지켜주었다. 반면, 홀든은 부유했지만, 곁에 아무도 없었다. 스스로 파수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마지막은 정신병원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는 진짜인가 거짓인가. 정신과 의사들은 연신 홀든에게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인지 물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우리에게도 진짜와 가짜 세상이 있었던 방황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을 날카롭게 구별하던 눈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그 사이를 걷게 된다. 당신은 진짜와 가짜 사이 어디에 있는 어른인가.


생각해 볼 질문

1. ‘가짜(phony)’로 가득한 세상에서 ‘진짜’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2. 홀든의 반항은 미성숙의 표현인가, 순수함을 지키려는 투쟁인가?

3. 당신은 누구의 ‘파수꾼’이 되고 싶은가?

노진화 박사 — 인문학 강연자 | 리더의 인문학 시리즈 저자

이 칼럼의 주제는 기업 인문학 강의 — 리더십, 조직문화, 변화관리 프로그램으로 확장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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