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 1899~1986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미로, 거울, 무한, 시간의 순환을 주제로 한 환상적 단편소설의 대가이다. 『픽션들』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적 작품이다.
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Ver.4 | 문화기호읽기 4
출처: 월간 리크루트
본 칼럼은 한국경제 월간 리쿠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픽션들』 줄거리 요약
만약 가능한 모든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면 어떨까? 1944년, 아르헨티나의 도서관 사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픽션들』이라는 18편의 단편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단편집에서 보르헤스는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쓰여지는 과정을 담았다.
대표작으로 유명한 「바벨의 도서관」의 첫 문장은 독자를 형이상학적 미로 속으로 끌어들인다. “우주(이것을 다른 사람들은 도서관이라고 부른다)는 무한한 수의 육각형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다.” 도서관에는 가능한 모든 문자 조합으로 만들어진 책들이 존재하며, 도서관 사서들은 평생을 바쳐 의미 있는 책을 찾아 헤매지만, 무한성 앞에서 끝내 답을 찾지 못한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중국인 추이펀의 소설은 가능한 모든 선택이 동시에 실현되는 시간의 미로다. 「비밀의 기적」에서 처형을 앞둔 작가 흘라딕은 총알이 심장을 향해 날아가는 찰나에 1년의 시간을 얻어 완벽한 희곡을 완성한다. 「원형의 폐허들」에서는 한 남자가 꿈을 통해 완벽한 인간을 창조하지만, 마지막에 자신 역시 누군가의 꿈속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바빌로니아의 복권」에서는 처음 단순한 오락이었던 복권이 점차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어, 모든 인간의 운명이 추첨으로 정해진다.
보르헤스에게 책은 현실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의 언어는 고정된 실체 자체를 부정한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작가」에서 텍스트는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 ‘원본’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시키고 허구가 현실의 원형이 된다. 이 작품집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등 후대 작가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작품 해석
텍스트가 현실을 창조한다
모든 텍스트는 사실을 담고 있지 않다. 보르헤스는 이 당연한 명제를 혁명적 통찰로 바꾼다. 백과사전은 서구 계몽주의의 상징이다. 절대적 지식, 객관적 진리, 권위적 담론의 집합체. 보르헤스는 이 가장 ‘믿을 만한’ 텍스트에 허구를 침투시켜 서구 지식체계의 허상을 폭로한다. 존재하지 않는 행성 틀뢔의 백과사전은 가상에서 점차 현실이 되어간다. 틀뢔 사람들은 명사를 믿지 않아 “달이 물 위로 떠올랐다”가 아니라 “위쪽-물-하늘-위로-둥근 것이-나타났다”고 말하며, 고정된 실체 자체를 부정한다. 소설이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소설을 모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메나르가 쓴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것과 다르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동일한 텍스트도 세르반테스에게는 시대의 배경에 따라, 독자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의미의 능동적 창조자가 된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현실의 그림자를 만든다면, 보르헤스의 세계에서는 허구가 현실의 원형이 되고 있다.
왜 도서관에서는 진리를 찾을 수 없는가?
「바벨의 도서관」은 보르헤스 문학의 정수를 담고있다. 도서관에는 25개 기호의 모든 가능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책들이 존재한다. 410페이지, 40줄, 80글자. 이 조건을 만족하는 모든 책이 있다. 당신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기록도, 내일 있을 일에 대한 예언도,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담은 책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사서들은 진리를 찾지 못하는가?
문제는 무한성에 있다. 의미 있는 책 한 권당 수백만 권의 무의미한 책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책은 “aaaaaa…” 같은 글자의 반복이거나 완전한 무작위 조합일 뿐이다. 원하는 책을 찾을 확률은 사실상 0이다. 무한한 정보는 정보의 부재와 같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계몽주의가 꿈꾸었던 ‘완전한 지식’에 대한 보르헤스의 냉소다.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파들은 모든 지식을 수집하고 정리하면 인간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도서관에서 무한한 정보는 무지와 다르지 않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의미는 소멸하고, 진리는 더욱 멀어진다. 사서들이 평생을 바쳐 몇 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는 설정은 인간 인식의 한계를 상기시킨다. 무한한 정보는 정보의 부재와 같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성경의 바벨탑에서는 언어의 다양성이 저주였지만, 보르헤스에게는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이다.
선택이 무한히 가능해질 수 있다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중국인 추이펀의 소설은 모든 가능한 선택이 동시에 실현된다. 주인공이 적과 마주쳤을 때 그를 죽이기도, 친구가 되기도, 그에게 죽기도 한다. 시간은 영원히 분기하여 수많은 미래로 향한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가능하다면 선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빌로니아의 복권」에서는 모든 인간의 운명이 복권 추첨으로 정해지는 사회이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직업부터 배우자까지 모든 것이 우연에 맡겨진다. 어쩌면 모든 것이 우연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거대한 필연일지도 모른다.
「비밀의 기적」에서 흘라딕의 처형은 정해진 운명이지만, 그 운명 안에서도 창조의 기적은 가능하다. 총알이 심장을 향해 날아가는 찰나에 그는 1년의 주관적 시간을 얻어 완벽한 희곡을 완성한다. 물리적 시간은 신의 것이지만, 의식의 시간은 인간의 것이다.
보르헤스의 소설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만약, 미래가 이미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무한한 텍스트에서 가능성도 무한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르헤스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넷플릭스의 인터랙티브 영화 『밴더스내치』처럼 관객이 선택하며 스토리가 분기하는 작품들, 그리고 무수한 포스트모던 소설과 SF 작품들이 보르헤스의 미로에서 길을 찾았다.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도, 위키피디아의 무한 연결망도, 심지어 메타버스까지도 보르헤스가 그린 세계의 구현체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보르헤스의 무한한 미로에서 어떤 새로운 길을 그려낼 것인가?
생각해 볼 질문
1.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실제로 누군가가 ‘쓴’ 이야기가 아닌가?
2. 정보가 무한한 시대에 진리를 찾는 것이 왜 더 어려워졌는가?
3. 선택지가 무한하다면 그것은 자유인가, 또 다른 감옥인가?
노진화 박사 — 인문학 강연자 | 리더의 인문학 시리즈 저자
이 칼럼의 주제는 기업 인문학 강의 — 리더십, 조직문화, 변화관리 프로그램으로 확장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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